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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거 총을 든 할머니 / 마음에 드는 구절

Jsphnn 2020. 9. 18. 16:38

 브누아 필리퐁 장편소설

 장소미 옮김

 

 

 

"설마 세상이 공평하다는 헛소리를 주절거릴 만큼 바보는 아니겠지?"

"네, 물론이에요. 그런 흰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도 법은 믿는다?"

"법을 수호하며 살아온 지 삼십 년입니다. 네, 전 법을 믿어요."

"그럼 날 지켜줘야 할 순간엔 어디 있었니?"

베르트의 두 눈에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멀리 지나가는 구조선에 필사적인 신호를 보내는 표류자의 씁쓸함이 어렸다.

 

_228p

 

죄인 아까씨들에게도 장점은 있다. 바로 그들이 이미 더렵혀졌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부모와 심지어 교회로부터 내쳐진 이들이었다. 방황하는 가련한 영혼들이다.

 

_238p

 

그는 유년 시절 이래로 잊었던 오래된 교리문답의 기억을 길어 올려, 베르트가 다시 눈을 뜨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했다. 이 할머니가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할머니의 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어 몸이 달았기 때문이다.

 그녀도 임종이 임박했다는 것을 예감했기 때문일까? 베르트가 심연에 빠져들기 직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미지는 폴짝폴짝 뜀뛰기를 하는 여자 어린이였다. 아이는 명랑하고, 무사태평했다.

 무엇보다 자유로웠다.

 

 

_244p

 

"나의 귀여운 베르트, 안 그럴 수 있다면야 가장 좋겠지만, 살다 보면 남자들한테 네가 그들보다 더 강하다는 걸 알려줘야 할 때도 있을 거야."

 "그런데 할머니, 아니잖아. 남자들이 더 강하잖아."

 "안 그래. 남자들이 우리한테 그렇게 믿게 하고 싶은 거지. 무엇보다 널 절대 우습게 보도록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그래도 할머니, 남자들이 키도 더 크고, 힘도 더 세잖아."

 "맞아. 허나 남자들은 아주 멍청하기도 하거든. 그러니까 더 자라면, 널 지배하도록 놔둬서는 안 된다는 걸 이해하게 될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이고."

 베르트는 입을 헤 벌린 채 반신반의하는 눈초리로 할머니의 말을 경청했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할머니의 가르침이 마당의 체리 나무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무르익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_251p

 

 "영감님도 할머닐 사랑했고요?"

 "미치도록."

 

 

_278p

 

 "노르베르, 당신은 늘 화가였나요?"

 "네, 늘."

 "화가가 되고 싶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됐어요?"

 "당신은 언제 처음으로 숨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그건 기억 못 하죠. 아기 때였으니까요."

 "마찬가지예요, 베르트."

 "이해했어요."

 

 "그림은 절대 선택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냥 명백한 거예요. 피할 수도 없고, 그것이 아니면 죽을 수도 있는 무엇."

 

 

_347p

 

베르트는 자기 자신 속으로 침잠했다. 힘겹게 아문 상처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두려웠다. 고통이. 상처를 다시 헤집어야 했기에.

 

 

_362p

 

"방아쇠에서 손 떼는 게 좋을 거야, 레옹. 아니면 다음 총알은 발육부진인 네 썩은 과일을 터뜨리게 될 테니까."

베르트가 바위 위에 서 있었다. 길들여지지 않는 머리칼을 바람에 휘날리고 기다란 치맛자락을 펄럭였다. 나나의 장총이 세 사냥꾼을 겨누고 있었다.

 

 

_407p

 

 

수사관은 살인자를 부둥켜안는 것이 규칙에 위배되는 것인지 자문했다. 이어서 그는 상관없다고 생각했고, 두 팔을 벌렸다. 베르트가 움찔 뒤로 물러났다. 남성의 접근에 대한 오랜 관성. 그녀는 정신을 추스른 뒤, 이 마지막 선물을 받아들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받아본 가장 아름다운 선물.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고, 인종차별주의는 해악이며, 모든 소수자들, 다시 말해 다수와 다른 이들에 대한 박해는 혐오스럽다. 전혀 새롭지 않아서 울림이 없는 이 명제는 그만큼 당연하고 견고한 것일까? 브누아 필리퐁은 베르트를 통해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 명제들이 민주주의처럼 많은 피와 투쟁으로 획득했으나 자칫 방심하면 언제든 무너지기 쉬운 허약한 가치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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